한국의 NGO, 변화를 위한 과제
오성규 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전 환경정의 사무처장
1. 왜 다시 “시민운동의 위기논의”인가?
“한국사회 NGO, 위기인가?”식의 질문이 제기되고 논의된 것이 오래된 일이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이후 가장 극대화되었던 시민운동의 영향력은 2004년 참여정부의 등장, 2005년 본격적인 경제침체와 고용불안 등 시대상황과 맞물리면서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고, 이 틈 사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시민운동의 위기” 논의였다.
논의과정에서 “시민운동단체의 위기냐?”, “시민운동의 위기냐?”라는 식의 주체의 한계를 강조하는 흐름이 있었고, “지역에서는 여전히 할 일이 많고, 즐겁게 일 한다”라는 표현처럼 중앙의 거대조직과 대변형 운동의 위기로 차별화해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논의과정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풀뿌리운동이 빠르게 확대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분권과 균형발전을 강조하는 참여정부의 이념과도 궤를 같이하는 것이어서 사회적 자원의 상당 부분이 풀뿌리운동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형성되었다.
물론 그것이 시민운동 위기논의의 종결을 의미하거나 주요함의를 현실화시킨 것이라는 주장은 아니다. 오히려 2009년 이명박정부가 탄생과 연이은 촛불항쟁은 직접민주주의와 집단지성에 대한 주목으로 확산되면서 시민운동의 위기논의를 포섭하는 새로운 논의로 발전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사회 NGO, 위기인가?”라는 논의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물론 종결되지 않은 논의라는 맥락이 기본적인 필요성을 말해준다. 더불어 주창운동, 대변형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 방안, 든든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바탕으로서 풀뿌리운동의 발전방안 등을 내놓아야 하는 과제도 있다.
하지만 지금껏 “시민운동의 위기논의”는 특정시점의 현상을 분석하여 특정모델을 만들어가기 위한 논의가 아니라는 점에서, 현실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나 사건 등을 시민운동에 실천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계기적 이행논의” 성격에 가깝다고 본다.
이 시점에 주요한 계기는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이라는 정치일정이다.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민주주의의 역행과 독선적 통치에 대한 대중적 반발이 고조되어 있는 사회적 분위기이다. 즉, 그 어느 때보다도 “변화”에 대한 대중적 열망이 크다는 것이다. 전자가 기회의 성격이라면 후자는 가능성의 농도 문제로 판단된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을 통해 시민운동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점이 유사한 배경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시민운동이 전반적으로 침체국면에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변화”를 열망하는 대중들의 기대를 시민운동이 어떻게 끌어안으면서 자기변화를 창출해낼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정리할 것입니다.
2. 한국의 NGO가 처한 상황과 대응의 흐름
1)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 된 NGO
2010년 천안함사태가 발생한 후 참여연대는 정부의 조사결과발표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점들을 정리해서 UN안보리에 공개서한을 보냈다.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져 보수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것은 고사하고, 어버이연합과 고엽제전우회 등이 참여연대 사무실을 에워싸고 극렬한 행위를 자행했다. 물론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도 그린벨트 해제에 반대하는 환경단체의 행사를 물리력으로 저지하는 행위나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에 안티를 조직하는 등의 행위는 비일비재하게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이 이익을 침해하는 것에 대한 자구적 행위였다면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사태는 그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몇 년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8년에는 환경연합의 회계부정사태가 세간에 큰 주목을 받았다. 사건의 시시비비를 떠나 그 과정을 주목해보면, 회계처리상의 문제가 발견되어 조직내부에서 처리를 하고 있던 과정이었는데 검찰의 조사가 개입된 것이다. 연이어 터진 환경재단의 회계문제도 비슷한 선상에서 진행된 사건이고, 그런 흐름은 전국으로 확산되어 정부재정이 들어간 시민단체의 사업에 대해서 샅샅이 훑어내는 감사원 감사가 벌어졌다.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던 NGO가 이제는 여러 세력들로부터 감시와 견제를 받는 시대로 확연히 변화했다. “모든 권력이 감시의 대상이 되듯이 이제 시민단체도 하나의 사회적 권력으로서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세세한 논의로 들어가면 권력의 시민운동에 대한 통제성격 등이 없지 않으나, 근본적으로는 대중들의 시각에서 권력을 가진 만큼 감시도 받아야 한다는 정서가 더 크게 자리잡은 것으로 볼 일이다. 이제는 옳은 일을 하는 도덕적 집단이기에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시민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2) 의제와 여론 주도력 한계
MB정부 초기에 전국을 들끓게 했던 광우병쇠고기 촛불항쟁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시민운동이 초기동력이 아니었다. PD수첩을 보고 청계광장에 자발적으로 모였던 청소년들이 시작했고, 이에 공감한 네티즌들이 결합하면서 확산된 운동이었다. 당시 환경단체와 보건단체 등이 쇠고기 안정성에 대한 연대기구를 가동하고 있었음에도 사회적으로 주목받을 의제로 제기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용산사태도 마찬가지다. 수도 한 복판에서 경찰의 무력진압으로 아까운 목숨이 산화하는 사태가 벌어졌어도 시민운동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사실 재개발 재건축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민운동내부에서 논의되던 의제였고, 2004년과 2008년 총선에서는 뉴타운이 맹위를 떨칠 정도로 심각하게 왜곡되었던 문제였다. 용산사태 직후에 시민단체들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오랫동안 철거민운동을 하던 분이 “이미 오래전부터 시민운동진영에 이 문제의 중요성을 얘기했건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사람이 죽으니 모습을 보여주는 군요”라는 힐난이 뼈아팠다.
홍익대 청소노동자 문제, 복지논쟁,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한국의 원전논쟁 등에서도 시민운동단체들의 영향력이나 역할이 사회적 주목을 일으킬만한 수준이 되지 못했다. 이런 현상을 근거로 주창운동, 대변형 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3) MB정부 출범과 시민운동의 변화
MB정부의 출범은 시민운동의 실체적 변화를 가져왔다. 대표적인 현상이 심각한 재정악화 현상이다. 재정악화는 시민운동을 전업으로 하는 시민운동가들이 급감하는 상황으로 나타났고, 이것은 시민운동 전반의 활동이 위축되는 현상과 연해있다. 물론 회원기반이 든든한 단체와 재정지출이 그다지 크지 않는 풀뿌리단체들은 예외일 수 있겠으나, 한국 NGO들이 처해있던 구조적 취약성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MB정부와의 대립적 관계의 연속은 불가피한 측면이 뚜렷하지만, 그로 인해 정보획득의 한계와 감시의 사각지대가 커졌다. 그 대부분의 영역은 구체적인 정책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들로서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것들이어서 시민들과 생활상의 이슈를 매개로 소통할 수 있는 여건이 취약해진 측면이 부의 효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아예 이슈보다는 중장기적인 생활방식의 변화를 꽤하는 흐름이 뚜렷해진 것도 큰 변화중의 하나다.
4) 협업의 제약과 리더십의 교체
시민운동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극대화됐던 시점은 시민운동 내부의 협업이 가장 왕성했던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와 이듬해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출범, 2004년 노무현대통령 탄핵대응, 연이은 부안방폐장투쟁 등이 협업으로 운동의 성과를 극대화시킨 사례다. 정치사회적 중요한 변화를 위해서 “따로 또 같이”가 필요하다는 정신은 시민운동의 자랑중의 하나였다.
반면 단군이래 최악의 토목공사라고 불리는 4대강사업의 대응과정은 사안의 위중함에 비해 대응주체의 개별성이 지나치게 컸다. 특히 2012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정치관계법의 개정 등 정치개혁은 정당 스스로가 할 수 없었던 대표적인 영역이었고, 밖으로부터의 압력이 조직될 때 성과가 있었던 과제였다. 내년 4월이 총선이고,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시간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운동진영의 목소리는 조직되어 있지 못하다. 점차 시민운동이 갖고 있던 협업의 DNA가 사라져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대목들이다.
게다가 많은 시민운동단체들의 경우 집행책임자 역할을 했던 리더십들이 교체되었다. 2011년 초에는 10여명의 상근대표와 사무처장들이 현역을 떠나 휴지기에 들어가거나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리더십의 교체는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시민운동의 특성상 상당한 자원이 인적으로 축적되는 시스템이기에 일시적 자원이탈로 인한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5) 민중운동과 보수운동의 시민운동화
근래 들어 전교조, 한국진보연대, 한대련 등 전통적인 민중운동단체와 진보단체들이 시민운동화 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전교조의 경우 “교육희망네트워크”, “초록교육연대” 등 조합원들이 다양한 시민운동조직을 만드는 방식으로 시민운동 영역으로 들어왔다. 이것은 단순한 활동방식의 변화로 볼 일이 아니라, 민중•진보운동이 대중적 기반을 강화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보수단체들이 많은 시민단체들을 결성시키는 흐름도 뚜렷한 변화중의 하나다. 소위 “뉴”자가 붙은 단체들이 대표적인데, 뉴라이트전국연합, 뉴라이트학부모연합, 선진통일불자연합, 뉴라이트기업인연합, 선진국민연대, 시대정신 등 교육, 종교, 기업, 언론 등 우리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뉴라이트 단체들이 만들어졌다. 이들의 활동은 전통적인 시민단체들의 활동방식과 다를 바가 없지만, 정치적으로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역할을 한다는 차별성이 있다.
“민중•진보단체 + 보수단체 + 기존 시민단체 = 시민운동”이라는 양상이 분명해지면서 시민들에게 NGO는 명확한 이미지로 형성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마도 다양한 주체들이 등장했고, 이념적으로도 복잡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신사회운동”으로서의 시민운동을 설명하기에도 한계가 있는 듯 느껴진다.
6) 신자유주의 흐름에 대한 대응의 한계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국민국가를 무너뜨리고 기업의 지배가 강화되는 뚜렷한 흐름이 형성되었고, 시민들에게는 위험사회에 대한 실체적 징후가 분명해졌다. 시민운동 역시 이러한 흐름에 조응한 활동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체제 차원에서의 FTA반대운동, 반세계화운동(세계사회포럼, 한국사회포럼 등), 국내적으로는 SSM에 맞서 중소상인을 옹호하는 운동이 대표적다.
한편으로는 위험사회에 대응하는 자구적 운동으로서 마을만들기, 공동체운동, 지역화폐와 협동조합 운동 등이 활발하게 모색되고 있다. 이것은 조한혜정 교수가 언급했듯이 “경비원이 있는 성벽을 두른 아파트가 아니라 마을이고, 소비를 과시하기 위한 이웃이 아니라 상호 호혜적 관계를 맺어가는 이웃의 형성”이 대안적 미래라는 성찰적 탈근대와 반국가주의의 면면한 흐름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위험에 처한 시민들을 시민운동의 동반자로 끌어들이는데 한계를 보였다. 예를 들어 환경의식의 경우, “87년 이후 약 10년 동안 꾸준히 높아지던 환경의식이 97년 외환․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역전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구도완, 이혜경의 조사에서도 드러나듯이 환경위기에 대한 의식은 2000년을 정점으로 점진적으로 약해지고 있으며, 환경보호가 경제성장보다 우선이라는 의식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 출처: 구도완, 이혜경. 2006.
| 환경보호 우선 | 조화(중립) | 경제성장 우선 |
1982 | 6.6 | 69.9 | 14.3 |
1987 | 2.8 | 88.7 | 6.0 |
1992 | 51.5 | 29.0 | 19.5 |
2006 | 32.0 | 49.0 | 19.0 |
* 1987년은 7점 척도, 나머지는 5점 척도로 조사 | |||
※ 출처: 구도완, 이혜경. 2006.
비슷한 조사로 국회운영위원회의 국민의식조사가 있다. 95년의 조사에서 89%가 경제성장보다 환경보호가 우선이라고 답한 반면, 2005년에는 환경보호보다 경제성장이 중요하다는 답이 56%였다. 97년 외환․금융위기 경과 후 우리 국민들의 환경보호와 경제성장에 관한 의식이 거의 정반대로 바뀐 셈이다.
가장 최근에도 유사한 상황의 연속이다. 대표적 위험사회 사례로 원전을 들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전세계적 위협으로 비화되었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우리사회의 원전에 대한 지지도는 큰 변화가 없었다.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전에 65%수준이던 원전지지도가 이후에는 겨우 1% 떨어진 64% 수준이라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시민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스템에 포섭되는 흐름에 억제력을 보여주는 능력에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 시민운동의 현황이다. 오히려 저항의 흐름은 시민운동 경계 밖에서 조직되는 흐름이 커 보인다.
7) 중산층 중심의 시민운동
[표2] 2007년말 도시근로가구 분위별 소득범위 | ||
분위별 | 월평균소득 | 소득범위 |
1분위 | 984,188 | ~1,329,307 |
2분위 | 1,674,425 | 1,329,308~1,907,172 |
3분위 | 2,139,919 | 1,907,173~2,355,401 |
4분위 | 2,570,882 | 2,355,402~2,783,729 |
5분위 | 2,996,575 | 2,783,730~3,209,838 |
6분위 | 3,423,101 | 3,209,839~3,672,479 |
7분위 | 3,921,857 | 3,672,480~4,245,145 |
8분위 | 4,568,432 | 4,245,146~5,077,343 |
9분위 | 5,586,253 | 5,077,344~7,234,415 |
10분위 | 8,882,577 | 7,234,416~ |
평균 | 3,675,4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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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문제의 원인과 연결된 지점으로서 시민운동의 지지층과 이념지향성 사이에 괴리문제가 있다. 90년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면서 대부분의 지지층은 중산층 이상으로 여겨지며, 역설적으로 참여민주주의는 현실의 한계로 인하여 이러한 현상을 심화시키는데 일조한 측면도 있다.
시민운동의 기본적인 사명은 민중들이 가장 고통받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그 동안 시민운동은 97년 외환금융위기 이후 대량실업사태가 구조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관심을 크게 기울이지 않았고, 대체 그 영역은 빈민•자활운동진영의 자구적 노력에 의해 지탱되어 온 측면이 크다.
시민운동의 자기중심을 재설정해봐야 하는 대목이다. 당연히 모든 시민운동단체가 그럴 필요는 없지만 시민운동의 주요 흐름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수준의 변화는 필요해 보인다.
3. 시민운동의 변화를 위한 과제
1) 시민운동 내부에 담론논의가 필요한 시점
작년에는 사회구성체 논의가 필요하다는 제기가 일각으로부터 나왔다. 미루어 짐작컨대 87년 체제 이후에 우리사회는 큰 변화가 진행되었고, 그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고 그에 조응하는 사회개혁(국가개조를 포함한) 구상이 나와야 한다는 메시지로 여겨진다. 한 때는 새로운 사회구상에 대한 논의가 봇물처럼 쏟아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논의들이 시민운동 내부의 담론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신자유주의 체제, MB정부의 민주주의 퇴행과 독선적 국정운영, 한반도 평화의 위협, 기업지배의 강화와 사회양극화의 심화 등 87년 체제 이후 최근까지의 우리사회의 변화는 그 폭과 깊이가 크다. 따라서 사회변화를 목표로 활동하는 시민운동진영에서는 이에 대한 고민의 깊이를 더하여 시민운동이 지향하는 사회에 대한 담론지형을 만들어야 충분한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시민운동진영은 이 시대에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에 대해 답해야 한다. 더군다나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라는 우리사회를 크게 바꿀 양대 선거가 있기에 그러한 바램은 더욱 절실해 보인다.
최근에 백낙청 교수가 제기하고 있는 “2013년 체제”는 그런 요구를 반영한 흐름으로 읽을 수 있다. 백낙청 교수는 “2013년에 세상을 크게 바꾸겠다면 박정희시대의 ‘잘살아보세’라던 구호와는 질적으로 다른 ‘잘사는 삶’에 대한 꿈이 있어야 하고, 그런 꿈을 펼칠 기회를 곳곳에서 짓밟아온 이명박정부에 대한 뼈저린 성찰과 분노를 표출해야 하며, 무엇보다 남북이 공유하는 2013년 체제를 자신들의 기득권에 대한 최대의 위협으로 아는 세력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많은 씽크탱크들이 네트워킹 되어 있고, 또 많은 부문에서 바탕논의들이 진행되었기에 비교적 어렵지 않은 과제로 보인다. 다만 전문가들과 시민운동가 층위에서 제한된 논의가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담론논의가 요구된다. 지금도 야권연대(통합과 연합을 포함) 논의 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논의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분명히 구분되는 것은 “정치적 필요”라는 제한된 목적에 국한되고 있을 뿐이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 과정을 전혀 모른다. 아마도 결과물이 나오면 툭 던져진 활자를 받아 안는 역할에 불과할 것이다.
2) 정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개입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방법은 정치다. 폴 크루그먼이 “미래를 말하다”라는 책에서 던진 메시지도 “문제는 정치다”였듯이 현실정치가 규정하는 영역들이 워낙 광범위하고 결정적이다. 문제는 우리 시민운동에 덧씌워진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굴레가 워낙 강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조건반사와 같이 시민운동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하지만 시민운동은 이미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고, 뉴라이트 단체들의 정치활동은 거의 경계가 없는 수준이다.
근래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 미국의 무브온의 경우를 볼 때 서구사회에서도 시민운동과 정치적 역할에 대해 큰 경계를 긋지 않고 있다. 무브온은 “수동자적인 입장이었던 시민들이 정치와 선거의 주인으로서의 참여적인 관점을 가지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성이 있다.” 시민운동의 정치적 역할을 제약하는 흐름의 연장선에는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제약하는 전근대적 발상과 맥락이 닿아 있다. 최근 선거까지 선관위와 사법기관이 보인 행태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자유로운 정치발언조차 법의 잣대를 들이대어 처벌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수백억 원의 돈을 들여 미디어를 통해 투표독려 캠페인을 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정치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를 정치꾼들의 권력쟁취를 위한 공간이나 시민들을 동원하는 이전투구의 장으로 여기는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것에서 사회적 자본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과정과 그런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이고, 우리사회의 미래를 시민들이 결정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시민운동이 실천적으로 보여줘야 할 책임이 있다. 2012년이라는 정치적 계기를 잘 활용할 필요가 더 절실해졌다.
이 과정에서 앞에서 짚었던 시민운동의 이념지형을 재설정하는 노력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때마침 우리사회도 진보적 흐름을 타는 경향이 느껴지고 있다.
3) 개인 미디어시대를 꿰뚫는 운동전략의 개발
이미 오래전에 하승창은 “앞으로 시민운동에게 중요한 요소, 키워드는 인터넷, 지역, 개인이다”라고 설파했다. 정보의 소통, 대화, 모임, 캠페인, 마케팅 등 일상의 대표적인 행위방식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것도 모바일과 SNS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효과도 충분히 검증되고 있다. 지난 6.2 지방선거와 4.27 재보선에서 투표참여 운동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투표율 상승에 기여했는지는 명백하게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기자들이 입에서도 정보흐름의 속도만으로 볼 때 트위터가 기성 언론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민주화 운동의 확산에서,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 피해의 현장에서 그 영향력은 지대했다.
시민운동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 정보의 집중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권위적인 정부, 덜 개방적인 공무원 문화 등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정보비대칭 문제를 핵심 의제로 제기하고, 나아가 다양한 분야에서 이슈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기하기 위해 시민운동에 집중되던 신선한 정보의 힘을 막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최소한 정보와 소통을 위해 NGO에 의존하는 경향은 상당히 미미해졌다. 어떤 경제단체보다 미네르바의 영향은 컸고, “날라리 외부세력”, 김여진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많은 사회적 문제에 개입하고, 또 큰 성과를 남겼다.
태생적으로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시민운동단체의 속성을 잠시 억눌러서라도 개인 미디어시대에 부합하는 운동방식을 찾아야 한다. 수많은 개인 미디어가 사회변화를 위한 플랫폼에서 활발한 소통이 일어나게 할 수는 없을까?
4) 실제 현실을 변화시키는 실천사업이 중요
시민운동은 문제제기만 하지 말고 대안을 내놓으라는 비판에 대해서 한 때는 “시민운동은 문제제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정부가 대안을 내놓는 것이다”라는 식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던 때가 오래되지 않았다. 요즘엔 아마도 그런 식의 주장을 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만큼 NGO가 가져야 할 책임의 범위가 커졌다고 본다.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크게 약화된 시민운동이 이를 복원하는 위해서는 “신뢰”라는 키워드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현장에 달려서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크고 작은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신뢰는 그러한 성실한 실천을 통해 작더라도 의미있는 실천사업을 통해 축적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시민운동은 문제제기 -> 대안제시 -> 실천으로 이행하는 모습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 과정은 시민들을 시민운동의 동반자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거기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